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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11-14 16:09:00
견지 명장 노선주옹
 글쓴이 : 관리자 (관리자)
조회 : 2,896  
견지 명장(名匠) 노선주 씨

기록 일시: 2004년 7월 19일 16:00~
장 소: 노씨견지 공방
기 록 자 : 이하상

견지낚시에 입문한 꾼들이 연조가 쌓여 견짓대의 기능에 관심을 갖게 되면 더 좋은 견지를 찾게 마련이다. 이 때 먼저 접하게 되는 전설이 속칭 ‘노씨대’ 혹은 ‘노씨 탱크대’이다. ‘노씨대’는 명품 견짓대의 대명사이며, 초보 시절 이 견지 하나를 손에 넣고 싶은 꿈을 갖게 된다.
견지 장인 노선주(魯善柱)씨는 1936년 평양 아래 선교리에서 노태경씨와 송득희 여사의 2남 3년 중 둘째로 태어났다. 노선주 씨의 간략한 연보는 다음과 같다.
ㆍ1936년 12월 2일 평양 선교리에서 출생
ㆍ1948년 13살 때 가족이 월남
ㆍ1957년 처음으로 견짓대 제작 시도
ㆍ1959.10~1962.12 군 복무
ㆍ1963~1984년 공방을 열고 견짓대 제작, 판매
ㆍ1977년 MBC T.V 명인열전에 견지 제작 명인으로 출연
ㆍ1985~1990년 핸드백 제조공장 운영
ㆍ1991~1993년 친구 김현도씨와 견짓대 공동제작
ㆍ1994년 이후 독립 공방을 운영하며 제작 활동

부친 노태경 씨는 관악기 부품인 리드 제조로 유명한 분이었고, 노선주 씨도 부친의 피를 받아 손재주가 뛰어났다. 견짓대를 만들게 된 사연도 우연이었다. 어린시절 평양에서 출생한 까닭에 대동강에서 견지하는 모습과 부친이 견지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1957년 명동에 있는 한 낚시점에 근무하던 친구를 만나러 가서 견지를 만드는 것을 보고, 단목을 한 토막을 얻어 견지를 직접 만들어 보았다. 노선주 씨의 솜씨는 곧바로 명동 인근의 낚시꾼들에게 알려지고 ‘명품’으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 이후 피아노 살 ‘철견지’, 등나무, 대나무 견지를 주로 만들었고, 당시까지 성행하던 챌낚대도 만들었다.
1963년 군에서 제대한 후 왕십리 행당동에서 공방을 열고 본격적으로 견지를 만들게 된다. 덕성공업에서 나온 FRP 소재가 주 소재였고, 또 탱크 안테나를 가지고 ‘탱크대’를 만들었다. 1984년까지 수많은 견짓대를 만들었으며 속칭 ‘노씨대’의 성가가 높아졌고 전통견지 제작의 명인으로 매스콤에 소개된다.
1985~1990년, 노선주 씨는 견지대 제조를 접고 타 제조업에 종사하게 된다. 노선주 씨가 잠적하면서 죽었다는 소문이 났고, 낚시꾼들은 ‘노씨대’를 그리워하고, 노씨의 솜씨를 아쉬워하기도 했다. 노선생 성격이 원래 외골수이며, 내성적이어서 무슨 일을 해도 남과 상의하지 않아, 별다른 말없이 공방을 그만 두자 그런 소문이 났다고 주위 사람은 말한다.
1991~1993년 친구인 김현도 씨와 손잡고 다시 견짓대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때 김현도 씨의 작품에는 ‘노씨대’ 흔적이 남아 있다. 1993년 강동구 암사동에서 개인 공방을 열고, 1996년 현재의 천호동으로 옮겨 왕성하게 제작 활동을 하고 있다. 노선주 씨가 견짓대를 만들기 시작한지 어언 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 동안 자재와 낚시도구의 현대화에 따라 ‘노씨대’도 발전해 왔다.
노선주 씨가 말하는 견짓대의 변화이다. 우선 대 길이가 1960년대 초 60cm 정도에서 65cm로, 다시 1970년대에는 72cm로 변화하였다가 현재는 꼭지까지 길이가 68cm 내외로 정착되었다. 소재가 좋지 않았던 시기에는 긴 대를 만들면 좋은 대가 나오지 않았다. 대의 강도도 초기에는 0.6호 내지 0.8호대와 같은 약대가 주종이었다. 당시는 낚싯줄이 약하였고, 물이 맑아 강대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45cm 정도의 누치도 대어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또 초기에는 설장이 크고, 살수도 26, 7살이었으나 최근에 올수록 살 수가 줄고, 설장의 크기도 작아지고 날렵해졌다. 현재와 같이 설장이 작은 강대가 정착된 것은 마루대 소재와 낚싯줄의 변화에 부응한 것이다.
부자재 변화도 견지제작에 영향을 주었다. 견지 제작 초기에는 마땅한 접착제가 없어 가구용 호마이카를 사용하였다 한다. 경화가 늦어 제작에 시간이 걸렸으나, 시계 수리에 사용하는 급성 접착제를 사용하며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설장이 틀린 각도도 1970년대까지 45도 정도였으나 1980년대에 75도, 현재는 90도로 변화를 보인다. 견짓대와 줄이 강해져 대어를 대상으로 견지낚시가 레포츠화 하는 경향을 반영한 것이고, 견지 제작기술이 이를 뒷받침한 것이다.
노선주 씨가 제작활동을 재개한 1993년 이후의 시기는 소재의 첨단화, 고급화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마루대로 카본 등 첨단소재가 적용되어 견짓대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설장 살이 대나무에서 카본이나 글라스파이버로 제작되고, 여러 가지 색을 넣은 소재가 출현하여 견짓대가 화려해져 미적 감각을 강조한 시기이며 오늘의 견짓대 모양이 완성되었다. 특히 1995년 이후가 노선주 씨 작품의 전성기이다. 견짓대의 고급화를 시도한 시기로 ‘롤스로이스대’, ‘붕어살 대’, ‘팔각대’ 등 이때 제작된 수많은 견지는 명품으로서 사랑받고 있다.
노선주 씨 이전에도 ‘라이타 돌 영감’, ‘유도김씨’ 등 유명한 장인이 있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견짓대를 발전시키고 현대 견짓대의 정형을 만든 사람이 노선주 씨이다. 현재 ‘노씨대’의 정형은 대 길이 70cm 이내, 설장 너비 7cm 내외, 설장길이14cm 내외이며, 살 수는 22살인 것이 견짓대의 표준이 되고 있다.
오늘 날 당연하게 보이는 것에도 창의와 연구의 결과가 집적되어 있다. 현재는 컴퓨터로 견지를 설계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감각과 솜씨로 만든 노선주 씨의 설장은 컴퓨터 설계보다 오히려 정교한 면이 있다. 1970년대까지 견지 설장의 아래, 위 흘게 살은 두 번째 살에 처리했다. 당시 설계로는 흘게살을 아래, 위 끝에 박으면 설장이 약해 견디지를 못했다. 그래서 흘게살을 둘째 살에 넣으면서 줄로 보강해 ‘젤피’를 감아 사용하였다. 노선주 씨가 흘게살을 제일 아래에 꽂은 것을 보고 못미더워 낚시점에서 팬치로 잡아 다녀 강도를 시험해 보았다는 일화도 있다. 모두 정확한 설계의 문제였고, 이를 해결한 것이 노선주 씨이다.
노선주 씨의 일솜씨를 주위 사람들은 무엇이나 만들 수 있다는 분이라고 평한다. 견짓대를 비롯한 낚시도구도 ‘노씨가 손을 대면 명품이 탄생한다.’고 한다. 챌낚시대나 옛 견지에서 쓰던 붕어살을 현대 견지에 도입한 것도 노선주 씨다. 또 화학소재 마루대를 깎을 때 칼로 깎았다. 옛 ‘노씨대’를 자세히 보면 칼로 훑은 흔적이 있다. 대단한 솜씨다.
창의력도 대단하다. 탱크 안테나 속대를 뽑기 위해서는 껍질을 벗겨내야 한다. 작업이 어렵고 품이 많이 들며, 벗긴 껍질도 쓸모가 없었다. 노선주 씨는 안테나 껍질을 2합해서 견지를 만들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안테나 껍질대’이다. 지금은 소재가 없어 만들지는 못하지만, 전성기에 만든 이 대는 견지 마니어들의 애장품이며, 꾼들이 선망하는 대상이 되어 있다.
속칭 ‘노씨대’가 작품으로 인정받는 점은 여러 가지에 있다. 우선 소재의 선택에서 제품 마무리까지 적절하게 가공이 이루어져 있어 낚싯대로서의 기능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또 다른 장점은 미적 감각이다. 설장의 크기가 균형이 잡혀 있고, 적절한 색깔로 살을 배치하고, 손잡이 아래ㆍ위를 마감한 금색과 적색 칠의 조화, 그리고 마루대와 꼭지의 색깔까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유명한 것은 꼭지이다. 육각으로 가공된 꼭지는 완벽한 모양과 색깔로 견짓대 브랜드화의 효시이며 작품성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아름다움으로 ‘노씨대’는 낚싯대로뿐만 아니라, 감상 대상으로서 평가받고 있으며, 또 전통견지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관광 상품으로서의 성장 가능성까지 갖추고 있다.
워낙 ‘노씨대’가 유명하다 보니 노씨 견짓대에 얽힌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어떤 사람은 ‘노씨의 견짓대가 하도 좋아 노씨와 낚시를 같이 갔다가 노씨의 낚시가방을 통째로 들고 도망갔다’는 일화가 있다. 소재가 귀하던 시절 노선주 씨가 평범한 소재로 만든 견짓대가 비행기 안테나로 만든 것이라는 소문이 나서 몇 손을 거쳐 거금에 거래된 일도 있다. 또 안테나 견짓대가 유행이던 시절에 ‘노씨 안테나대’는 쌀 한 가마 값을 호가하였다고 한다. 1970년대 초의 이야기이다.
노선주 씨가 들려 준 견지에 얽힌 일화이다.
한 낚시꾼이 견짓대 5대를 주문하고 찾으러 왔다. 이리저리 돌려 보고 마음에 썩 든 모양으로 봉투를 슬그머니 노선주 씨 발치에 놓더니 말없이 가버리더란다. 노선생이 보니 너무 많아 돌려주려 쫓아가 부르니까, 후다닥 줄행랑을 치더란다.
“그 양반 돈이 적어 내가 물건을 돌려달라고 하는 줄 알았나봐.”
하며, 웃으신다. 또 노선생이 견지를 갔더니 한 꾼이 자기가 만든 대를 들고 있다.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
“낚싯대 좋은 것 가지셨소.”
“당신 노선주 씨를 아오? 나는 노씨대만 씁니다. 그것도 노씨공방에 가서 직접 맞춰 쓰오.”
노선주 씨에게 낯선 얼굴이었다. ‘노씨대’를 써야 견지를 한다고 할 만큼 꾼에게 ‘노씨대’는 성가가 높았다. 이같이 ‘노씨대’는 여울에서 고기 잡는 낚시도구의 하나가 아니라 작품으로 인정받고, 꾼들이 아끼는 수장ㆍ애장품이 되고 있다. ‘노씨견짓대’만 여러 백 대를 가지고 있는 수집 마니어가 있다는 소문도 있다. 그만큼 명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 미국인 등 외국인이 견지에 관심을 갖고 공방을 방문해 견지를 구입해 가기도 한다. 또 일본 낚시잡지에서는 노선주 씨에 관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매년 방문하고 있다. 이러한 외국의 관심에 비해 오히려 국내에서의 노선주 씨에 대한 평가는 소홀한 점이 있다. 너무 가깝게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그런지도 모른다.
2002년 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후에도 노선주 씨는 견지 제작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작품에 들이는 공력이 전성기만 못하다는 평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금년 69세인 노선주 선생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오늘도 견짓대 제작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언제까지 견지를 만들겠냐는 질문에,
“할 때까지 하는 거지.”
하며, 파안대소 한다. 더욱 건강하시어 더 좋은 작품을 만드시기를.

■ 노선주 공방 연락처
상호: 노씨공방
주소: 강동구 천호동 2-5
전화: 02-486-4451






<사진 1> 작업을 하다 맞아 준 노선주 선생.
<사진 2> 최근 제작한 ‘노씨대’의 모습. 다양한 색깔의 대가 아름답다.


<사진 3> 날렵하고도 미려한 설장의 곡선. 왕년의 솜씨가 살아 있다.

쌀밥 12-11-2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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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12-11-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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