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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낚시 고증자료
 
 
작성일 : 2012-11-14 16:04:19
팔당이야기
 글쓴이 : 관리자 (관리자)
조회 : 1,078  
* 이 자료는 조성욱 사업국장님이 발굴하여 고증위원회에 제보한 것입니다.
원자료출처 : 2003년 6월 16일 경인일보 - http//www.kyeongin.com
다시보는 경기산하 중 "강과 고락 나눈 바당(팔당)마을"

이재난고'의 저자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은 여행한 곳마다 일정과 거리를 꼼꼼하게 메모해 일기에 남겨두었다. 그 중에는 석실서원을 떠나 양평으로 가는 도중인 평구역(平丘驛)과 봉안역(奉安驛) 사이에 있는 덕수나루(德水津, 또는 德沼津)와 팔당나루(八堂津) 두 군데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있는데, 당대의 어학자이기도 했던 그가 팔당을 우리말로 '바당'으로 표기한 것이 눈에 띈다. 즉 '바당'을 한자말로 옮긴 것이 우리에게 더 귀에 익은 팔당(八堂)인 것이다. 바당은 바다 또는 바닥이라는 뜻을 갖는데, 여기서는 후자에 더 가깝게 해석된다.
게다가 이 말은 팔당댐이 건설되기 이전까지 이 일대에서 크게 유행하던 잉어잡이의 '바탕'을 연상케 한다. 그물로 잉어를 가두어두는 자리를 두고 이 곳 사람들은 '바탕'이라고 했다. 바당마을 팔당리는 일제시기, 정확히 말하면 1914년 이후 양주군 관할이 되었지만 이전까지는 광주 땅이었다. 광주에서 양주로 관할이 바뀌게 된 이유는 하나의 면에 속해 있던 나루의 강변 양쪽을 강을 중심으로 행정구역의 경계로 삼아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일대 마을들은 오랫동안 지녀온 동일한 생활영역은 무시된 채 군을 서로 달리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남양주시 팔당리에서 강 건너 하남시 창우동, 배알미동 및 이석리와 강을 다시 건너 남양주시 두미마을과 조안리까지 약 6㎞에 걸쳐 있는 이 지역은 과거 광주군 동부면과 초부면으로 '두밋강'이라고 부르는 열두 길 수심의 강과 더불어 살아온 마을들이다.
이 두미강(斗尾江)에서 이 곳 사람들은 '머리계'라고 불리는 어업계 조직을 결성해 그물바탕을 만들고 겨울철에 잉어낚시 판을 벌였다. 그 중심은 두미강이지만 머리계 그물바탕은 경안천과 남한강의 합류지점까지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기록은 1911년에 발간된 '한국수산지(韓國水産誌)'(4권, 235쪽)에 이미 나와 있고, 남양주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임병규 소장이 1997년에 이에 관한 구체적인 현지자료를 수집하여 발표한 바 있다. 단지 '수산지'에는 계의 이름을 두계(頭契)라고 하고 'もりけ(모리케)'로 음을 표기하였는데, 머리(頭)보다는 잉어몰이의 '몰이'를 딴 '몰이계'로 정정되어야 옳을 것 같다.

잉어는 남한강과 북한강 줄기에 서식하다가 겨울을 나기 위해 수심 깊은 두미강으로 몰려들고, 해동이 되는 3~4월에는 다시 남한강과 북한강 줄기로 거슬러 올라가 수초에 산란한다. 그러므로 한강에 얼음이 꽁꽁 얼어 빙판을 이루는 동짓달과 섣달에 두미강의 잉어잡이 시즌이 시작되는 것이다.
잉어잡이를 총 지휘하는 우두머리를 두레조직과 마찬가지로 '영좌(領座)'라고 불렀다. 그의 명령에 따라 그물을 드리우는 일, 커다란 나무망치로 얼음장을 내려치며 잉어를 한쪽으로 모는 일, 그리고 다시 그물로 몰아놓은 잉어를 막는 일 등이 이루어졌다. 영좌는 '오늘은 어느 바탕에 그물 꾀라!'고 명령을 내린다. 12바탕의 안배를 고려함은 물론이다. 바탕마다 그물 조직이 있었는데, 그 성원을 두고 '그물쟁이'라고 했다. 대개 정오를 전후로 일이 벌어진다.
그물을 드리운 쪽으로 잉어를 모는 일은 직경 약 50㎝, 높이 약 180㎝에 무게가 50∼60근 나가는 통나무 위에 동아줄을 걸어 묶어 만든 '머리토막'을 양쪽에서 두 사람이 동아줄로 잡아 들어올렸다가 얼음장 위로 내려치는 것인데, 12명의 '머리계꾼'이 일렬로 여섯 개의 머리토막을 동시에 내려치며 이에 놀란 잉어를 몰고 나서 그물을 내려 막는다. 준비가 끝나면 오후부터 주로 서울에서 낚시꾼들이 몰려든다.
일제 초기의 기록으로는 많을 때는 1천명, 보통 때는 200~300명이며 자리를 잡으려면 2전5리에서 5전 정도의 입장료를 머리계원에게 내야 했다. 당시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은 평균 25전이었다고 한다.
삼봉'이라는 것이 그 때 유행하던 낚시 방법이다. 얼레에 줄을 감고 30g의 봉돌에 세 개의 갈고리가 고정되어 있는 낚시를 그 끝에 묶고 줄에는 부표를 끼운 것이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도 이런 낚시를 두고 일근삼구(一根三鉤)의 삼봉(三鋒)이라고 하였다.
이튿날 해가 뜨면 그물을 걷는다. 그물마다 잉어가 걸려 있게 마련인데, 그것으로 그물 사용료를 대신한다. 입장료는 계원들이 나누어 갖는데, 영좌는 한 몫을 더 받는다. 잉어몰이는 잉어는 물론 모든 물고기의 길을 막아버린 팔당댐이 1973년 12월에 완공되면서 막을 내렸다. 물길이 막힌 줄도 모르고 댐을 넘어 가려고 버둥대던 물고기들의 모습을 주민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잉어잡이의 중심지에 위치한 도미 나루로 두밋강을 건너면 만나는 마을이 하남시 아랫배알미리다. 이 곳에는 배 만드는 기술자인 조선장(造船匠) 김용운(金龍雲, 1913~1997)씨에 이어 아들 김귀성씨가 운영하는 작업장이 있다. 배알미 외에도 능내 등 부근에 배 만드는 곳은 있었으나 이 곳이 특히 유명하였다. 광나루, 팔당, 양평 문호리, 청평, 원주 등지에서도 주문이 왔는데 주로 봄에 몰리기 때문에 일손이 딸릴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배의 특징은 물깊이가 무릎 정도밖에 안되는 강 상류를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배 바닥이 편평하고 탄력이 있다는 점이다. 근대 한선(韓船)이라고 하는 것은 일제 전후로 강이나 바다에 떠다니던 배를 말하는데, 거룻배·나룻배·야거리배·당두리 등이 있었다.
배를 만들 때는 대개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어 함께 일하며, 큰 배는 2∼3명, 작은 배는 1∼2명이 배의 종류에 따라 일주일에서 한 달 동안 제작한다. 마을사람들은 배에다 마을 뒤편 검단산(黔丹山, 675m)에서 모은 땔감을 싣고 서울로 가서 여각에 판 후 그 돈으로 소금을 사서 싣고 다시 올라왔다. 취수장 건설로 배를 띄우지 못하면서 제작주문도 사라졌다.

바뎅이 나루, 즉 팔당 나루의 다른 명칭은 창모루 나루다. 하남시 창우동 바깥창모루에서 강을 건너면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리 바뎅이에 이른다. 바뎅이 나루는 1986년경까지 나룻배로 건너다녔다. 창모루에서 바뎅이 나루를 건너는 사람들은 주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팔당역으로 갔고, 팔당리 주민들은 강 건너 창모루에 농토를 가지고 있어서 농사를 짓기 위해 나루를 건넜다.
마지막으로 운행하던 나룻배는 목선이 아니고 광복호라는 이름의 디젤선이었는데, 뱃사공은 팔당리 사람이었다. 창모루에는 술집이 세 집이 있어 길손들을 상대하였다. 정 나루는 미사동 당정섬에 있으며 건너편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동막을 따서 동막 나루라고도 한다. 당정섬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잠기면서 대부분의 주민이 이주해 나갔고 1994년의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섬의 형태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한성부 좌윤을 지낸 조필방(趙弼邦)이 이곳에 정착한 이후 후손들이 당정(堂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기며 살아왔다고 한다. 덕소 나루는 하남시 미사동 및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에 있다. 덕소 우시장이 번성했기 때문에 하남시 일대에서도 나루 이용객이 많았다. 소장수들은 장호원(1·6일), 이천(2·7일), 경안(3·8일), 덕소(4·9일)를 돌아서 5·10일 '막장'에 동대문 우시장으로 가는 순환주기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 하남시 천현동에는 이천에서 신장, 천호동, 덕소 등지로 이동하는 소장수들을 상대로 소를 먹이고 재워주던 마방(馬房)이 아직 남아있다. 현재 하남시 망월동에서 미사동으로 건너가는 도로는 조정경기장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우기에는 물에 잠기는 곳이었다. 따라서 장마철에는 나룻배로 건너다녀야 했다.
을축년 대홍수 때의 당정섬이 그렇듯이 이곳은 큰물만 나면 그 끝은 천지가 개벽되는 저지대가 아니면 두밋강변처럼 평지가 확보되지 않아 농선(農船)을 타고 원정농사를 다녀야 하는 고지대로 양극을 이루면서 강과 고락을 같이하였다. 그러나 상사창동에서 만난 연자방아가 말해주듯이 강을 벗어나면 여느 지역과 다름없는 평범한 농촌이 전개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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