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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11-14 16:07:32
대동강견지의 원류, 평양견지공방을 찾아서
 글쓴이 : 관리자 (관리자)
조회 : 2,423  
대동강 견지의 원류, 「평양견지 공방」을 찾아서

기록 일시: 2004년 7월 9일 14:00~
장 소: 평양견지 공방
기 록 자 : 이하상
<사진 1> 견지 장인 한정섭 씨

견지 장인인 한정섭(韓正燮) 선생 댁을 찾은 것은 7월9일 오후 2시. 무더운 날임에도 집을 제대로 찾아올까 걱정스러우셔 큰 길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한정섭 선생은 1921년으로 우리나이로 84세이다. 후리후리한 키에 허리도 꼿꼿하여 80을 넘은 분이라 생각하기 어렵다.
한 선생은 평안남도 강동군 고촌면 광덕리에서 태어났다. 평양에서 100리 정도 떨어진 곳이고, 지금은 북한의 평양시에 편입된 지역으로 대동강의 중류에 있다. 부친 한치문(韓致文)씨는 농사를 2만여 평 짓는 인근에서는 부농으로 후릿그물을 여러 채 가지고 있고, ‘매생이(마상이)’를 가진 멋쟁이 낚시꾼이었다. 한정섭씨는 7, 8세 때부터 부친을 따라 배 견지를 하며 낚시를 즐기고, 배웠다.
“아버지가 한 마리 잡으면, 나도 한 마리 잡았지요.”
한 선생이 견지를 만들어 본 것은 12살 때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단목견지(소목견지)가 뻐그러져서 이를 고치려고 하다가 자작해 보기로 한 것이다. 소목견지는 그때 돈으로 3원이었는데 쌀 5말 값에 해당하는 비싼 물건이었다. 평양에 가서 한약방에서 단목(소목)을 구해 손수 마루대를 깎아 견지를 만들어 본 것이다. 먼저 쓰던 얼레를 견양삼아 똑같이 만들어 보았더니 되더란다. 지금과 같이 속성 접착제가 없던 당시에는 민어부레풀로 견지바닥을 만들었고, 하루를 기다려야 풀이 말라 ‘뼘대’를 꽃을 수 있었다. 한 선생이 말하는 ‘뼘대’는 오늘날의 설장 섶대를 이름이다. 얼레를 꾸미고 난 후 나무로 깍은 동그란 꼭지를 달고, 황경피로 손잡이를 감으면 대가 완성된다. 견지를 꾸미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인근에 소문이 나서 어린 한 선생이 만든 소목 견지가 당시로서는 고가인 2원에 팔리기도 하였다.
한 선생이 들려주는 당시의 견지낚시 모습이다.
우선 구더기를 만들려면 수수 알을 간 겨와 보리 겨를 섞어 뜬 물에 개어 소나 말 외양간에 깔아 놓으면 거기에 5~6일이 안 되어 구더기가 생긴다. 구더기와 깻묵을 섞어 두어 줌 들어가는 그물주머니에 넣어 밑밥을 깐다. 대동강에서의 깻묵은 오늘날과 달리 참깻묵을 썼다. 참깨를 맷돌에 간 후 찐 것을 썼다. 밑밥 주머니를 ‘죄미 주머니’라 불렀으며 오늘의 설망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한 선생은 ‘썰망’이란 말을 월남해서 처음 들었다 한다.
낚싯줄은 명주실을 꼬아 자작해 썼다. 가장 곱고, 고급인 명주실을 꼬아 만들며(꼰사), 일단 줄을 꼰 다음에는 도토리나무 껍질을 넣은 물에 삶아 물을 들인다. 이 과정을 ‘낚싯줄 들인다.’고 했다. 낚싯줄을 들이면 줄 올이 풀리지 않고 장마철 습기에도 썩지를 않았다. 낚싯바늘은 바느질 바늘을 칼줄(줄칼)로 갈아 ‘민지(미늘)’를 세우고 불에 달궈 구부린 후 기름이나 양초를 녹인 물에 넣어 식히면 경화가 되었다고 한다.
한 선생은 이렇게 만든 얼레와 실, 바늘로 대동강에서 매생이를 타고 배견지를 하였다. 누치, 끄리, 마자 등 강에 있는 물고기는 모두 잡았다. 한 선생 고향에서 끄리는 ‘적지네’라 불렀고, 더 큰 바디끄리는 ‘어의’라고 하였다 한다. 대동강에서는 매생이는 닻을 두개 써서 가로로 대고 뱃전을 앞두고 견지를 했다. 닻 두개로 이물과 고물을 통해 고정하였고 두 사람이 배를 타고 낚시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대동강에서 한 선생이 부친과 하던 견지낚시는 여러 가지이다.
첫째가 ‘어의 불림’이라는 끄리낚시이다. 일종의 뜰낚으로 추를 가볍게 해서 어의라고 불리던 큰 끄리를 낚았다.
둘째가 앉을낚이다. 미끼를 달아 강바닥에 드리고 매상이의 이물과 고물을 가로지른 닻줄 위에 견지를 기대어 놓고 기다리면 물고기가 와 입질을 한다. 그 때 채면 누치, 끄리, 마자, 모래무지가 잡힌다. 하루에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견지를 하면 들통으로 하나 가득 잡을 수 있었다 한다. 오늘날의 스침낚시는 월남한 후 배웠으며, 앉을낚에서는 스침질이 필요 없었다고.
셋째가 삼봉낚시이다. 한 겨울 얼음이 언 후 구멍을 뚫고 삼봉을 드리면 큰 잉어가 잘도 잡혔다 한다. 당시 대동강 물이 하도 맑아서 강바닥의 지형을 미리 살펴 둔 후 낚바탕에 삼봉을 드리면 영락없이 큰 잉어가 잡혔다고 한다.
넷째가 ‘쏘가리 방낚’이다. 새우를 미끼로 맑은 물 큰 바위 밑으로 흘리면 쏘가리가 와서 입질을 한다.
“쏘가리가 입질을 하면 한 참 우물거리지. 그러다 쑥 끌고 들어가면 챔질을 하지.”
다섯째가 ‘챌낚’이다. 겨울 입동이 지나면 사슬낚을 가지고 매생이를 저으며 잉어, 누치를 잡는다.
한 선생이 월남한 것은 1.4후퇴 때인 31살이 되던 해였다. 부산에서 일년, 그리고 대전에서 6년을 산 후 서울로 와 살며 광나루 인근에서 배견지를 하였다. 선생이 38살이 된 해였다. 광나루 인근에서 배견지를 하던 꾼들은 대부분 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이었고, 한강에서는 북한 매생이가 아니라 남한 식 낚거루를 타고 낚시를 했다.
매생이가 더 쓰기 좋지만, 남한에서 매생이를 만드는 장인이 없어서이다. 매생이는 한강 못지않게 물이 넓고 물살이 드센 대동강에서 전후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좋은 배라고 한다. 한 선생이 월남 한 후 만들어 쓴 낚거루는 모두 11척이고, 12번째 배는 FRP 소재로 만든 모터 배이다. 마지막 배는 청평에서 2002년까지 썼지만, 보관하기가 어려워 처분했다 한다.
견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80년경부터이다. 견지는 대동강에서는 ‘얼레’라고 하였고, 견지낚시라는 말 대신 ‘얼레낚시’라 했다. 견지란 말은 월남한 후에야 들었다. 성북 역 근처에 있는 ‘성북영감’에게서 견지를 구입하였으나 마음에 안 차서 자작해 보기로 한 것이, 이제는 ‘평양견지’라는 상표로 1년에 5, 6백대를 만든다. 한 선생의 본업은 건축업으로 견지 제작은 부업과 취미를 겸한 것이다.
“견지를 돈벌려고 만드는 것은 아니야. 건축 일이 적은 한 겨울이나, 시간이 나면 소일삼아 견지를 만들지. 늙은이도 움직거려야지.”
구이동에 있는 연립주택의 서너 평 남짓한 방이 한 선생의 서재이자 작업실이다. 방은 낚시 도구와 견지 제작기구로 꽉 차 있다.
“바다낚시, 민물낚시 모든 낚시를 섭렵했지요. 아마 내가 가진 낚시 도구가 돈으로도 꽤 될걸요.”
창문 가 방 한구석 책상 위에 견지를 만들기 위한 드릴을 비롯한 제작기구가 비치되어 있다. 이 곳에서 ‘평양견지’가 탄생하는 것이다. 한 선생이 만든 견지는 보통 견지보다 좀 투박해 보이고, 얼레바닥도 더 크다. 섶대도 대나무를 쪼개서 쓰기보다는 가는 산죽 통대를 쓴다. 또 아래, 위 흘게 살이 두 번째 살에 꽂혀 있다. 이러한 견지는 어릴 적 대동강에서 쓰던 견지와 기본 모양이 변하지 않은 그대로이다. 옛날과 다른 점은 마루대가 나무가 아니고, 살이 카본 살이라 점, 살 수가 17, 18개에서 22살로 늘었다는 점이다.
한 선생이 지금도 만들고 있는 대동강 견지의 표준 규격은 다음과 같다.
・ 대 길이: 코에서 꼭지까지 72cm
・ 설장 너비: 8.5cm
・ 설장 길이: 18.5cm
・ 뼘대 길이: 20cm
옛 대동강 견지는 소목대에 대나무 붕어 살을 쓰고, 18살이 기본이었으나 가는 카본 살을 쓰면서 살 수가 늘었다. 얼레가 틀린 각도도 옛날대로다. 얼레가 틀려 있어야만 대가 단단하고, 큰 물고기가 잡혔을 때 ‘줄 버팀’이 좋다고 한다. 설장을 불에 쪼여 잡아 트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 대가 약하고, 햇볕에 오래 쪼이면 틀림이 풀린다.’고 말하신다. 지금 만드는 견지는 형태나 기법이 옛날 대동강에서 쓰던 얼레를 기본삼고 있다.
헤어질 무렵 한 선생이 문득 필자에게 나이를 묻는다. 나이를 말씀드리니,
“좋은 나이요.”
라고, 무심히 말하신다. 그러며 이태 전부터 몸이 전 같지 않다고 하신다. 그래도 계속 견지는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요즘 견지는 설장의 크기, 살의 종류 등이 점점 가볍고, 날렵한 형태로 변하고 있다. 한 선생은 특별한 요구가 있을 때는 주문대로 만들어 주지만, 기본은 옛 대동강 견지의 모습을 유지할 생각이시란다. ‘평양견지’는 요즘 것보다 투박하게 보이지만, 옛 대동강 견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마도 한 선생은 그 견지를 만들면서 부친과 매생이를 같이 타던 그 추억까지 재현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 평양견지 연락처
성 명: 한정섭
주소: 서울 광진구 구의 3동 206-1, 삼성 훼밀리타운 105-202호
전화: 02-454-9613~4, 010-3194-8388

<사진 2> 견지 제작기구 앞에 앉은 한 정섭 옹.

<사진 3> 한 옹이 나무 소재로 만든 견지. 옛 소목견지를 재현하려 만든 것이다. 크기는 옛 그대로이다.
<사진 4> 한 옹이 시판하는 여러 가지 견지. 아름답고 단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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